August 18, 2013

[BOOK] 알랭 드 보통, 불안 (Alain de Botton, Status Anxiety)

이 책의 제목은 '불안(Status Anxiety)'지만, 넓게 보면 '행복(Happiness)'에 관한 책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달성할 수는 없다. 수많은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행복을 고찰하는 사람이다. 20대 중반의 그가 사랑에 대한 3권의 책-'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 1993)', '우리는 사랑일까(The Romantic Movement, 1994)', '너를 사랑한다는 건(Kiss & Tell, 1995)'-을 쓰고, 10년 후(2004) 이 책을 쓴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무렵, 연애와 커리어는 고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는 불안에 대한 몇 가지 원인과 해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성공과 실패가 다양한 이유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역사상 최초로 모든 공과 책임을 혼자서 떠안는다. 하지만 성패를 결정짓는 많은 요소들이 우리들 밖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어떤 일에 대해 최선을 다했을 때, 실패는 불운한(unfortunate) 것일 뿐이다. 종교(이 책에서는 기독교를 언급)의 가르침과 같다. 남은 것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인가의 문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솔직해 보는 것이 좋다.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 하고 성패에 관해서는 공과 책임을 나누는 것, 이것이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 책은 내가 두 가지 생각을 분명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첫 번째 생각은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한 말이지만, 대부분 그렇게 살지 못한다. 특히 지인들을 보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본인에 대해 잘 모르겠으면 성장과정부터 본인의 모든 것을 기록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미리 간접경험이라도 해보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하고 싶은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택하는 것이 낫다. 잘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잘해내면 좋아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 번째 생각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나만의 철학을 갖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종교를 갖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결혼 전까지 노력해 보고, 힘들다고 판단되면 와이프의 종교를 따라갈 생각이다.

August 4, 2013

[BOOK] 박정자,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마그리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설명하는 코드는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가시성과 언표이고, 두 번째는 유사와 상사, 세 번째는 시선이다.

가시성과 언표는 대립관계이다. 보여주기와 명명하기, 그리기와 말하기, 모방하기와 분절하기, 바라보기와 읽기로 대립된다. 오랫동안 서구 미술사를 지배해온 원칙도 가시성과 언표에 관한 것이다. 글과 그림은 다르다는 것과 그림과 제목은 일치한다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두 가지 절대적 원칙을 파괴한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대상을 추상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비상식적 배치를 통해 가시성과 언표에 관한 원칙을 무너뜨린다.

유사와 상사는 둘 다 비슷함의 의미를 가지지만, 유사는 최초의 요소를 참조하여 모방하고 상사는 원본 없이 일련의 시리즈로 전개된다는 차이가 있다. 푸코는 유사는 재현에 봉사하고, 상사는 반복에 봉사한다고 설명했다. 마그리트는 유사란 생각의 성질이고, 상사는 대상의 성질이라고 단순하게 구분지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는 복사와 원본 사이의 구분을 교란시킴으로써 상사의 특징들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푸코와 마그리트와 말하는 상사는 플라톤-들뢰즈-보들리야르가 말하는 시뮬라크르와 같은 말이다. 플라톤의 이원론은 이데아를 중심으로 한 동일성을 강조하며, 시뮬라크르를 격하했다. 반면,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 대한 찬미로 시뮬라크르의 권리 회복을 선언했다. 들뢰즈는 시뮬라크르의 역동적인 힘을 찬양하면서 예술은 외적인 대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힘에 의한 반복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들뢰즈가 시뮬라크르의 밝은 면을 보았다면,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의 어두운 면에 주목했다. 시뮬라크르는 실재의 모방, 복제, 패러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기호를 대체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단순히 생물학적 기능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욕망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욕망은 필요, 요구와 구별되는데, 라캉은 요구로 필요가 총족된 다음,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어떤 것을 욕망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욕망은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결핍과의 관계다. 시선은 오브제 쁘티 아, 즉 욕망의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마그리트는 얼굴을 가리거나 얼굴에 헝겊을 뒤집어 씌운 그림들로 유명하다. 이런 그림들이 묘한 감정이 들게 하는 것은 시선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시선을 숨기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는 것이고, 이는 더욱 강렬하게 우리를 매혹시킨다.


July 24, 2013

[BOOK] 타라 파커포프, 연애와 결혼의 과학 (Tara Parker-Pope, For Better: The Science of A Good Marriage)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 1위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높다는 것은 쉽게 믿기 어렵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이혼율이 결혼한 부부가 이혼할 확률이나 이혼의 시대별 트렌드를 살펴보기에 적합하지 않은 통계치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구구조나 문화가 다른 나라별 비교는 엉터리다. 이혼율 통계의 맹점에 대해서는 이 기사에 잘 설명되어 있다. 2004년에는 무려 47.4%를 기록했다. 이혼율의 과대평가는 사람들의 올바른 기대수준 형성을 방해한다. 이혼을 흔한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면 자칫 '이혼 도미노'를 몰고 올 수 있다. 이혼율 외에도 결혼에 관한 괴담은 여럿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외도다. 드라마에선 외도를 하지 않고서는 주인공이 되기 힘들어 보인다. 신문에서는 유명인사들의 외도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외도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외도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결혼한 부부 중 약 10% 정도가 외도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10%도 높은 수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다수가 외도를 저지르는 것은 분명 아니다. 외도가 주로 결혼생활의 실패로 인해 나타나는 것을 감안하면 분명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다. 우리는 왜 대부분의 부부가 외도를 저지르고, 이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자신이 속한 집단이 실제 어떤지를 이해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결혼에 대한 개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 결혼은 경제적, 사회적 제도의 산물이다. 여성의 경제적 활동, 인스턴트 식품과 세탁기의 발명 등으로 세상은 빠르게 변해왔다. 더이상 여성들은 사냥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고, 남성들은 밥해 줄 사람을 찾지 않는다. 대신 공통 관심사와 가치관을 공유할 동반자를 원하게 되었다. 이전 세대들보다 결혼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기대 수준의 증가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높아진 기대 수준을 채워주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다툼은 잦아졌다. 싸움의 원인은 늘 돈과 시간이다. 돈과 시간의 공통점은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이다. 상대에게 한정된 자원을 나에게 더 많이 배분해주길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국 싸움의 이유보다는 싸움의 기술이 중요하다. 저자는 다양한 싸움의 기술을 언급하지만, 핵심은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의 관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과학이 필요하다.

과학의 발전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우리는 이제 사랑의 감정이 호르몬과 뇌신경의 변화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열정적 사랑은 보상과 중독을 관장하는 뇌 부위를 활성화한다. 뇌 스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부위는 도파민 수용체가 집중되어 있고, 도파민은 마약중독, 갈망, 희열감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다. 사랑의 빠진 연인들이 마약중독자와 같이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다. 이외에도 구애 초기의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동물과 같이 무언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유전적으로 유리한 상대를 후각을 이용해 찾아내기도 한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사랑에 관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과학적으로 이해를 한다고 해서 꼭 사랑을 잘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본래 설명은 쉬워도 실행은 힘든 법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으로 인해 가장 도움받았을 사람은 막 이혼을 경험한 저자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