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9, 2013

[BOOK]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의 언론인 겸 논픽션 작가 겸 평론가이다. 그는 1940년생으로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4년 동경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기자로 일하던 중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시 동경대 철학과에 재입학했다. 철학과 재학 중 평론 활동을 시작해 1970년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을 통해 당시 자민당 최고권력자이자 총리대신의 자리에 있던 다나카 가쿠에이에 대한 대중의 환상을 깨고 저널리스트계의 스타가 된다. 이후 “우주로부터의 귀환”, “뇌사”, “일본공산당 연구”, “정신과 물질”, “원숭이학의 현재”, “거악vs언론”, “임사 체험”, “뇌를 단련한다”, “인체 재생” 등 사회적 문제 뿐만 아니라 과학분야로까지 저술 분야를 넓히며 “앎의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 책은 다치바나 다카사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와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재미없는 책 그리고 나의 대량독서술, 경이의 속독술”, 두 권의 책을 부분적으로 번역한 것으로 다치바나 씨의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압도적인 독서량과 방대한 저술만큼이나 독서에 대한 견해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 문학을 탐독했던 그는 더 이상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 본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문학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그는 생생한 현실에 비해 문학 작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저 자신이 문학 작품을 읽지 않게 된 과정에서 논픽션, 나아가 생생한 현실이 제공하는 살아 있는 재미에 빠져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 작품을 읽지 않게 된 독자들은 픽션보다 훨씬 재미있는 논픽션 서적이 천지에 널려 있고, 또한 그 이상으로 흥미를 끄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실이 사방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p.45)
저자는 문학의 상상력이 논픽션이 제공하는 현실의 재미, 또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보다 흥미를 끌지 못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영상매체의 등장으로 활자매체인 문학은 더욱 설자리를 잃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전으로 추앙받으며 필독서로 꼽히는 책들이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개 톨스토이, 도스토예스키 등의 19세기 문학이 고전의 주류를 이루는 데 이러한 저서들은 불과 100여 년 전의 출판물에 불과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르려면 적어도 500년에서 1000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오히려 고전보다는 최신 보고서 속에서 지의 총체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서광이라 불리우는 많은 이들이 흔히 고전의 위대함에 대해 주창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신선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대목이다. 개인적으로도 논픽션과 문학의 독서비중이 9대1 정도로 논픽션을 선호하는 편인데, 늘 수준낮은 독서습관을 가진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이 있었다. 논픽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독서론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독서술은 보통 일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 본인이 궁금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분야의 거의 모든 책을 읽는 식이다. 우선 서점에 가서 관련 주제에 대한 책 중 읽어봄직한 책을 모조리 사와서 책상 위에 쌓아둔다. 그리고 먼저 입문서 5권 정도를 통독으로 읽는다.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면, 본격적으로 책에 따라 통독, 발췌독, 정독을 한다. 그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감일을 정해두게 되면 어떻게든 다 읽고, 일을 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안철수 씨가 일전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내용과 흡사하다. 안철수 씨는 본인의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생기면 그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고, 시간 내 원고를 마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독서술의 기본은 속독을 통해 주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들여 읽어야할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빠르게 판단하는 데 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많은 책을', '빠른 속도로', '가려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술이라고 주장한다. 매년 수백권의 책을 읽으며,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하는 그의 가치관과 잘 맞아 떨어진다. 1년에 40여권의 책을 정독하는 방법을 소개한 박웅현 씨의 "책은 도끼다"와 비교해가며 곱씹어 봐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인 독서습관은 사실 박웅현 씨에 가까운 편인데, 다독에 관해서는 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치바나 씨는 수많은 책을 읽는만큼 독특한 서재론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1)바깥 세계와 동떨어져 있을 것 2)좁을 것 3)기능적으로 구성된 공간일 것, 세 가지를 서재의 조건으로 꼽았다. 그는 고양이 빌딩으로 유명한 자신만의 서재를 가지고 있는데, 방대한 서적들을 효과적으로 보관하고,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디자인되어 있다. 다소 어지러워 보이더라도 책에 둘러싸여 손을 뻗었을 때 500여권의 책을 짚을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한다.

얇은 한 권의 책으로 감히 그의 지식을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놀라운 지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다. 병원에서 환자의 의식 수준이 점점 낮아지고 있을 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 위해 소재식 검사를 한다. 소재식 검사란 환자에게 "여기는 어디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지금은 언제입니까?"라는 세 가지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 질문들은 공간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인간 사회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는 어디인지, 시간의 축 속에서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시간의 위치는 어디인지를 물음으로써, 정상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검사하게 된다. 다치바나 씨는 이 세 가지 질문이야말로 인류가 전 역사를 통하여 찾고자 노력해 온 목표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들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을 얻기 위해 인간은 지적 욕구를 불태우고, 그 불꽃이 우리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며 진정한 삶의 의미라고 말한다.
오토마톤화된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지적 욕구를 항상 새로운 것을 향해 돌리는 인간이야말로 지속적으로 내면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런 삶의 방식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보다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p.37)
오토마톤(automaton)이란 어떤 내용이 입력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특정한 출력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뜻하는데, 인간의 일상적인 행동은 대부분 이런 오토마톤화된 영역에서 이루어 진다고 할 수 있다.
독서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다치바나 씨이기에, 이 책은 자서전적 성격을 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많은 반성과 다짐의 시간를 가졌다. 논픽션을 많이 읽는 습관이 나쁘지 않다는 것, 정독을 해야 할 책과 통독으로 마쳐야 할 책을 분명히 구분할 것, 더 많은 책을 읽을 것, 효율적인 독서습관과 환경을 만들 것 등이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내면적 성장을 추구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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